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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V-3 Saratoga
CV-3 Saratoga (원문보기)

CV-3 Saratoga 사진 : 전쟁전 사진, 순양함으로 건조되고 있던 때의 사진, 2차대전 및 비키니섬 핵폭탄 실험당시


다섯번째 함인 사라토가(Saratoga, CV-3)는 1920년 9월 25일 뉴저지주 캠덴에 있는 뉴욕 조선소(New York Shipbuilding Co.)에서 순양함으로 건조가 시작되었으나 워싱턴 해군무기 규제조약에 따라 1922년 7월 1일에 항공모함으로 주문이 변경되면서 제식번호도 CV-3으로 변경되었다. 33,000톤 급의 항모가 된 사라토가는 1925년 7월에 진수되었으며 미 해군성 차관부인인 커티스 D. 윌버 부인(Mrs. Curtis D. Wilbur) 부인의 명명을 거쳐 1927년 11월 16일에 해리 E. 야넬 대령(Capt. Harry E. Yarnell)을 함장으로 하여 취역하였다.

미해군 최초의 고속 항공모함인 사라토가는 해당 급이 갖는 가치를 신속히 증명하였다. 사라토가는 1928년 1월 6일 시운전을 위해 필라델피아를 출항하였으며 이후 1월 11일에 사라토가의 항공 장교이자 이후 2차대전의 영웅이 되는 마크 A. 미쳐(Marc. A. Mischer)가 첫 항공기로 갑판에 착륙하였다. 1월 27일에는 착륙실험을 위해 경식(硬式) 비행선인 로스 앤젤레스(Los Angeles, ZR-3)가 사라토가의 고물에 계류하여 연료와 물자를 보급받았다. 같은 날, 사라토가는 파나마운하를 통과하여 태평양으로 향했는데, 2월 14일에서 16일 경 니카라구아의 코린토로 해병대를 수송하기 위해서 경로를 바꾸었다가 2월 21일에 최종적으로 캘리포니아 산 페드로에 있는 전대에 합류하였다. 이후 1928년의 나머지 기간 동안 기계류의 각종 시운전과 훈련으로 시간을 보냈다.

1929년 1월 15일, 사라토가는 샌 디에고에서 함대와 함께 출항하여 첫 함대훈련인 함대배치과제(Fleet Problem) IX에 참여하였다. 대담한 기동을 통해 사라토가는 호위임무의 순양함 한대와 함께 함대에서 떨어져 나와 남쪽을 넓게 돌아보고 정찰함대와 사라토가의 자매함인 렉싱턴(CV-2)이 지키고 있는 파나마 운하를 공격하하였다. 사라토가는 1월 26일, 성공적으로 공격대를 발진시켰고, 당일 3회의 공격 이후 '침몰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항공모함을 위시한 고속 기동함대의 다용성을 증명하였다. 이후, 이러한 아이디어는 함대 교전교리에 포함되었으며, 이듬해 캐리비안해에서 이루어진 함대배치과제 X에서 다시금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 때 사라토가와 USS 랭글리(CV 1)는 렉싱턴으로부터의 급습으로 무력화되어 해상 전투에서 항공전력이 얼마나 빨리 균형을 뒤흔들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캐리비안해로의 함대 집중에 뒤이어 사라토가는 5월에 노포크에서 대통령 주재 관함식에 참여하고 1930년 6월 21일에 산 페드로로 귀항하였다.

2차대전 이전의 남은 10년동안 사라토가는 산 디에고-산 페드로 지역에서 연례 함대배치과제나 브래머튼 해군공창에서의 통상적 정밀검사기간을 제외하면 훈련을 지속하였다. 함대배치과제에서, 사라토가는 고속 항모 전술의 개발을 계속 돕고 있었는데, 스스로가 적에게 있어서 언제나 최우선 목표가 된다는 점을 사실로 인하여 그 중요성이 인식되었다. 1932년의 함대배치과제는 하와이를 위해 계획되었는데, 일본이 2차대전으로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만주사변이 일어남으로써 열기가 최고조되는 시기에 동시에 진행되었다. 사라토가는 하와이 연안에서의 훈련을 1월 31일부터 3월 19일에 걸쳐서 진행한 후 이듬해 1월 23일부터 2월 28일까지 진행될 함대훈련을 위해 본토(본문은 하와이인데, 문맥상 본토가 맞는 것 같아서 변경)로 돌아갔는데, 태평양 연안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롱 비치 영역에서 공격대를 성공적으로 발진시켰다.

1934년의 훈련으로 사라토가는 카리비안 해역으로 이동했으며, 4월 9일부터 11월 9일까지의 긴 기간 동안 대서양에 배치되었고, 이듬해 태평양 미 함대와 비슷한 수준의 광범위한 훈련을 진행하였다. 1936년 4월 27일에서 6월 6일까지 사라토가는 파나마운하 수역에서의 함대배치과제에 참여하고 함대와 함께 하와이로 돌아와 1937년 4월 16일부터 5월 28일까지의 훈련에 참가하였다. 1938년 3월 15일, 사라토가는 함대배치과제 XIX를 위해 산 디에고에서 출항하여 하와이 근해로 향했다. 과제의 두번째 단계에서 사라토가는 오아후에서 100마일 떨어진 지점에서 진주만으로 항공 기습을 감행하였는데, 이후 일본이 이를 따라서 진주만 공격을 하게 되는 경로이기도 했다. 본토 태평양 연안으로 돌아오면서 사라토가와 렉싱턴은 메어 아일랜드오 알라메다로의 공격훈련을 하면서 이러한 공격방법을 따랐다. 사라토가는 1939년 함대 집결에서 정밀 정비에 들어갔으며 이후 1940년 4월 2일에서 6월 21일 사이에는 전운이 짙어짐에 따라 최후로 시행된 함대배치과제 XXI에 참여하였다.

1940년 10월 14일에서 29일 사이, 사라토가는 일군의 병력을 산 페드로에서 하와이로 수송하였고, 1941년 1월 6일에는 브레머튼 해군공창으로 들어가 오랫동안 연기되었던 근대화 개수를 받았다. 이 개수에 의해 비행갑판 앞쪽이 넓어졌고, 우현 쪽으로 총좌가 신설되었으며 소구경 대공기총이 추가되었다. 1941년 4월 28일에 브레머튼을 떠난 사라토가는 5월에 상륙군의 훈련에 참여하고 6월에서 10월까지는 일본과의 정치적 충돌이 목전으로 다가옴에 따라 하와이까지 두번의 항해를 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했을 때 사라토가는 브레머튼에서 임시로 독에 들어가 있다가 나온 후 산 디에고에 입항해 있었다. 이에 사라토가는 웨이크 섬의 취약한 주둔군을 보강하기 위한 해병대 항공기들을 싣고 세번째의 항공모함 전대(당시 렉싱턴과 엔터프라이즈(CV-6)는 이미 바다로 나가있었다)의 중핵이 되어 갈 길을 서둘렀다. 이들 항공기의 존재가 있었기에 사라토가는 실질적인 지원병력을 보낸다는 의미에서 가장 논리적인 선택이었다. 사라토가는 12월 15일에 진주만에 도착하여 연료의 보급만 받고 즉각 출항, 렉싱턴과 엔터프라이즈가 작전을 위한 원거리의 호위를 하는 동안 지원병력과 물자를 싣고 있는 USS 탠지어(Tangier, AV-8)와 랑데뷰하였다. 하지만 사라토가의 전대는 느린 속도의 급유함, 그리고 12월 21일에 구축함들에 재급유를 해 주어야 한다는 이유로 지연되었다. 일본 항공모함의 항공기들이 섬으로 진격해왔고 일본군이 상륙했다는 보고를 접한 이후, 12월 22일에 지원군은 발길을 되돌렸고 웨이크 섬은 다음날 함락되었다.

사라토가는 하와이 군도 지역에서 작전을 계속 하고 있었는데, 엔터프라이즈와 랑데뷰하기 위해서 오아후 남쪽 500마일 지역에서 이동하고 있던 1942년 1월 11일 일본의 잠수함 I-16에서 발사하여 깊은 수심으로 주행해 온 어뢰에 의해 어떠한 사전경고도 없이 직격당했다. 이 피격으로 여섯명의 수병이 전사하고 3개의 기관실이 침수되었으나 사라토가는 자력으로 오아후에 도착하였다. 오아후에 도착한 후, 항공기에 대해서는 효용성이 없는 8인치 포가 철거되고 그 자리에 좀 더 효용성이 높은 5인치 38구경장의 다목적 포가 설치되었다. 이후 브레머튼 해군공창으로 가서 제대로 수리를 하면서 근대적인 대공포도 설치하였다.

5월 22일 퓨젓 사운드를 떠난 사라토가는 5월 25일 샌 디에고에 도착하여 항공대의 훈련을 진행하였는데, 이 때 미드웨이로의 일본군 기습공격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받았다. 항공기와 각종 물자를 적재하고 호위함을 모집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에 6월 1일까지는 출항할 수 없었으며, 미드웨이 전투가 끝난 6일에서야 진주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진주만에서 연료뵤급을 받은 후 7일에 출항한 사라토가는 6월 11일에 USS 호넷(CV 8)과 엔터프라이즈의 항공대를 보충하기 위해 34대의 항공기를 호넷과 엔터프라이즈로 옮겨주었다. 이들 3척의 항공모함은 이후 알류신 열도에서 보고된 일본군의 활동에 반격하기 위해서 북쪽으로 진로를 잡았으나 작전이 취소되면서 사라토가는 6월 13일 진주만으로 회항하였다.

1942년 6월 22일에서 29일 사이 사라토가는 해병대와 육군항공대의 항공기를 미드웨이 주둔군으로 보냈다. 7월 7일, 남서태평양으로 항해하여 27일에서 30일 사이에는 과달카날 상륙작전을 준비하기 위한 피지 섬의 상륙 리허설에서 항공 원호임무를 제공하였다. 과달카날 상륙작전에서는 F.J. Fletcher 소장(Rear Admiral F.J. Fletcher) 휘하의 기함이 되어 8월 7일에는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진로를 바꿔서 항공기들을 이륙시키면서 과달카날 상륙작전의 포문을 열었다. 사라토가는 상륙군을 위한 항공 원호를 제공하였으며, 이후 2일간 더 이 임무를 계속하였다. 첫째 날의 일본 항공기에 의한 공격은 항모까지 닿기 전에 격퇴되었으나 이후 공격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어 항모전대는 8월 8일 오후 연료보급선과의 랑데뷰를 위해 철수하였다. 결과적으로, 그날 밤 살보 섬의 전투에서 4척의 연합군 순양함이 침몰된 것에 대해 보복공격을 하기에는 너무 먼 곳으로 가 버린 것이다. 항모 전대는 솔로몬 동쪽 해역에서 계속 작전을 진행하면서 교두보로의 해로를 보호하면서 일본 해군에게 역습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역습의 기회는 1942년 8월 23일 일본해군의 수송선단이 발견되면서 찾아왔다. 사라토가는 적시 공격대를 발진시켰지만 일본 함대를 찾을 수 없었고 과달카날에서 밤을 보냈다. 다음날 항모로 귀환할 때 적과의 첫번째 접촉이 일어났다는 교신이 들어왔고, 두 시간 후 사라토가는 일본 항모 류조(龍驤(馬 변에 襄. 고개들 양))을 격침시킬 공격대를 발진시켰다. 늦은 오후가 되자 다른 적 항모에서 발진해 온 일본군 공격기 편대가 발견되었고, 사라토가는 급히 전투기들을 출격시켰다. 이들은 일본 지원항모(또는 개장항모, seaplane tender) 치토세(千歲)를 발견, 공격하여 피해를 입혔다. 한편, 구름이 끼어 있었던 덕에 사라토가는 일본 항공기의 정찰을 피할 수 있었고 집중 공격을 받은 엔터프라이즈가 피해를 입었다. 미해군 전대는 격렬한 전투를 치른 끝에 일본 항공력을 매우 약화시켜서 결국 일본군은 과달카날에 수송함대가 도착하기 전에 함대를 철수하였다.

8월 24일에 사라토가의 항공기들이 돌아왔고 25일에는 연료의 보급을 받고 솔로몬 동쪽 해역에서의 초계활동을 계속 수행하였다. 1주일 후 구축함으로부터 어뢰가 항모 쪽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으나 거대한 선체로는 어뢰를 피할만큼 빠른 기동을 할 수가 없었다. 1분 후 I-26에서 발사한 1개의 어뢰가 선체 우현의 총좌 쪽에 들이박혔다. 인명피해는 없었고 기관실 하나에만 침수가 일어났으나 어뢰 피격의 충격으로 인해 합선이 일어나 사라토가의 터보 전기식 추진기관이 동작할 수 없게 되어 물 위에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순양함 미네아폴리스(CA36)가 사라토가를 견인하는 동안 함재기들은 이륙하여 해안의 기지로 날아갔다. 이른 오후, 사라토가의 엔지니어들은 사라토가의 주 제어판에서 타버린 잔해들을 끄집어내고 임시로 회로를 만들어 넣어 사라토가는 10노트의 속도를 회복하게 되었다. 9월 6일부터 12일까지 통가타부(Tongatabu)에서 수리를 한 뒤 9월 21일에 정식 수리를 위해 진주만에 입항하였다.

1942년 11월 10일에 진주만을 떠난 사라토가는 피지섬을 거쳐 12월 5일에는 누메아(Noumea)에 도착하였다. 사라토가는 누메아 인근 해역에서 12개월동안 머무르면서 소규모 작전에서의 항공 원호를 지원하고 동부 솔로몬 지역의 미군을 보호하였다. 1943년 5월 17일부터 7월 31일까지 영국 항모 HMS 빅토리어스(Victorious)가 합류하였고 10월 20일에는 USS 프린스턴(Prinston, CVL 23)이 합류하였다. 11월 1일, 상륙군이 부겐빌(Bougainville)을 습격하는 동안 사라토가의 항공대는 인근 부카에 위치한 일본군 비행장을 무력화시켰다. 5일이 되자 일본의 순양함들이 연합군의 상륙대에 역습을 가하기 위해 라바울에 모이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오자 사라토가는 아마도 그 스스로가 했던 2차대전 중 했던 습격 중 가장 훌륭한 공격을 수행하였다. 사라토가의 항공대는 중무장된 방어진을 뚫고 들어가 모든 일본군 순양함을 무력화하고 부겐빌에서의 위협을 해소하였다. 사라토가 함 자체는 피해 없이 탈출하여 11월 11일에는 라바울을 다시금 공습하기 위해 돌아갔다.

사라토가와 프린스턴은 이후 길버트제도의 공격에 대한 교체 항모 그룹으로 선정되었고, 11월 19일 나우루 공격 이후 1943년 11월 23일 주둔군을 싣고 마킨과 타라와로 향하는 수송선단과 접선하였다. 항모들은 수송선단이 목적지에 도착할 때 까지 항공원호를 제공하였고 타라와에서도 지속적으로 항공정찰을 수행하였다. 이 때, 타라와는 수리 없이 1년 이상 가동한 상태였기 때문에 11월 30일 미국을 향해 출발하였다. 1943년 12월 9일부터 이듬해 1월 3일까지 오버홀을 거친 사라토가는 마지막으로 포대를 늘리는 개수를 받아 60문의 40mm 기총과 36문의 20mm 기총이 설치되었다.

이후 1944년 1월 7일에 진주만에 도착한 사라토가는 짧은 훈련기간을 거치고 1월 19일에 경항모 USS 랭글리(Langley, CV 27)와 경항모 USS 프린스턴(CVL 23)을 대동하고 마샬 군도의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출항하였다. 사라토가의 항공기들은 워체(Wotje)와 타로아(Taroa)를 1월 29일부터 31일까지 3일동안 공격한 후 에니위톡 환초의 주 섬인 엔게비를 2월 3일부터 6일, 10일부터 12일에 걸쳐 맹폭하였다. 상륙 전날인 16일에는 일본 방어진에 대한 최후의 일격을 날린 후 섬 전체에 걸친 근접 항공지원 및 정찰을 28일까지 수행하였다.

그 후 사라토가는 태평양전쟁의 주 전역에서 약 1년간 벗어나서 다른 곳에서 좀 덜 화려하지만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첫번째 임무는 극동에서 영국의 항모가 공격을 전개하는 것을 돕는 것이었다. 1944년 3월 4일, 사라토가는 세 척의 호위 구축함과 함께 마주로를 떠나 에스피리투 산토호바투, 태즈메이니아, 프리맨틀, 오스트레일리아를 지나 인도양에 있는 영국 동양함대(British Eastern Fleet)에 합류하였다. 3월 27일에는 바다에서 항공모함 HMS 일러스트리어스와 4척의 호위전함으로 구성되어 있는 함대를 만나서 이들 함대와 함께 3월 31일에 실론(현 스리랑카)의 트링코말리에 도착하였다. 4월 12일에는 프랑스 전함인 리슐리외(Richelieu)가 도착하여 연합군의 전력을 보강하였다. 그 후 이틀동안 항공모함들은 바다에서 강도높은 훈련을 받았는데, 이 기간동안 사라토가의 조종사들은 그들의 경험을 영국군 조종사들에게 전수해 주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4월 16일, 사라토가를 포함한 동양함대는 트린코말리를 떠나 19일에는 두 항공모함에서 이륙한 공격기들이 수마트라의 북서쪽 끝단에서 약간 떨어진 사방(Sabang)에 있는 항구를 공격하였다. 일본군은 새로운 공격세력에 크게 놀랐으며 항구의 설비와 유류저장소에 큰 피해가 가해졌다. 습격은 매우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사라토가는 두번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이 함대에 계속 남았다. 5월 6일에 다시 실론을 떠난 함대는 5월 17일에 자바 섬의 소에라바자를 공격했으며 결과는 마찬가지로 성공적이었다. 사라토가는 다음날 함대를 이탈하여 종대로 늘어선 동양함대를 지나갔으며 연합군의 각 함선은 서로 명예와 기쁨을 나누었다.

1944년 6월 10일 워싱턴주 브레머튼에 도착한 사라토가는 여름 내내 정비를 받았다. 9월 24일, 두번째 특수 임무인 야간전투비행대의 훈련임무를 부여받은 사라토가는 진주만을 떠났다. 사라토가는 1931년부터 야간비행의 경험이 있었고 많은 항공모함에서 전쟁중 야간에 항공기를 착륙시켜야 하는 일이 발생했지만, 1944년 8월에는 오로지 항모 USS 인디펜던스(CVL 22)만이 야간작전을 위한 특수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같은 시기에, 사라토가와 USS 레인저(Ranger, CV-4)로 구성된 제 11 항모 분함대가 진주만에서 야간비행 조종사의 훈련과 야간비행교리를 개발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사라토가는 이 중요한 임무를 4개월간 수행하였는데, 종료 전인 10월 경에 함대사령관은 초기부터 훈련에 임하고 있는 동안이지만 사라토가는 전투에서 매우 큰 역할을 가지고 있으며, 언제라도 전투에 참가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1945년 1월, 전장으로의 호출이 들려왔다. 인디펜던스급의 경항모는 안전한 야간작전을 할 수 있을 만큼의 크기가 되지 못한다고 증명되었기에, 사라토가는 1945년 1월 29일에 엔터프라이즈와 함께 야간전투 기동함대를 형성하여 이워(Iwo) 섬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진주만을 출항하였다.

사라토가는 2월 8일에 울리히에 도착했고 3일 후 엔터프라이 및 다른 4대의 항모로 구성된 기동함대와 함께 출항하였다. 2월 12일, 해병대의 티니안(Tinian)섬에서의 상륙작전 리허설 이후 항모 전단은 이워 섬 상륙작전 직전인 16일 밤과 17일 사이에 양동작전으로 일본 본토에 대한 공습을 수행하였다. 다른 항모들이 본토를 공격하는 동안 사라토가는 항공기들의 엄호를 맡았는데, 작전 도중 사라토가의 항공기도 일본군 비행장 두곳을 공격했다. 함대가 2월 18일과 19일에 걸쳐 급유를 받은 후 사라토가는 상륙군과 합류하고 이워 섬에 대한 야간정찰과 치치 섬 근방에서의 야간 방해공작을 위해 3대의 호위 구축함을 대동하고 2월 21일에 함대를 떠났다. 하지만, 작전영역에 도착하던 21일 오후 다섯시 경 적 항공기 편대 하나가 나타났는데 낮게 깔린 구름과 불충분한 사라토가의 호위세력에 의해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사라토가는 3분동안 여섯대의 일본기에 의해 다섯번 피격되었는데, 비행갑판의 앞쪽이 망가졌고 우현 측면에는 두개의 구멍이 뚫렸으며 격납고 갑판에서는 화재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사라토가의 승무원 123명이 사망 혹은 실종되었다. 오후 7시에 또 다른 공격대가 나타나 한발이 더 사라토가에 명중하였다. 오후 8시 15분, 화재는 진압되었고 항공기들이 되돌아오기 시작하였다. 결국 사라토가는 에니위톡으로 돌아간 후 본토 서해안으로 돌아가 수리받을 것을 명령받았으며, 3월 16일에 브레머튼에 도착하였다.

완전히 수리되어 퓨젓 사운드에서 5월 22일에 출항한 사라토가는 6월 3일에 진주만에서 새로이 파일럿 훈련을 시작했다. 일본이 항복한 후인 9월 6일, 훈련을 중단한 사라토가는 '마술 카펫 작전(Operation Magic Carpet)' 하에 3,712명의 해군 참전 병사들을 태우고 미국 본토로 향하기 위해 하와이를 출발했다. 마술 카펫 작전으로 사라토가는 다른 어떤 함정보다도 많은 총 29,204명의 참전병사를 본토로 귀환시켰다. 동시에, 항공기의 최다 항모착함 회수도 기록하였는데, 17년간 총 98.549회의 착함이 이루어졌다.

에섹스(Essex)급 항모가 다수 취역하기 시작하면서 사라토가의 역할이 없어지게 되었다. 결국 사라토가는 원자폭탄이 해군 함정에 주는 영향을 테스트하기 위한 비키니 환초에서의 크로스로드 작전(Operation Crossroads)에 투입되었다. 첫 폭발인 7월 1일의 공중폭발에서는 적은 피해만으로 살아남았으나, 항모 아래 수심 500야드(457m)에 가라앉은 잠수정에서 폭발시킨 7월 25일의 수중폭발에서는 함의 굴뚝이 갑판으로 무너져내리는 큰 피해를 입어 초호 아래로 가라앉았다. 사라토가는 1946년 8월 15일에 해군함정 목록에서 지워졌다.(산전수전 있는대로 다 겪고 마지막에는 핵폭발로 가라앉아버리다니.. 왠지 눈물이 핑.. ㅡㅜ)

사라토가는 2차대전 기간 동안 총 7 명의 무공훈장 수상자를 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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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ggdrasill | 2005/11/26 17:01 | 밀리터리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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