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피의 작업장 이글루본점 매장은 www.mmk.pe.kr
by Muphy 이글루스 피플
rss

skin by 이글루스
전차의 역사 - 세계 제 1차 대전
Tank History - World War I (원문보기)

1. 전차(Tank)
2. 전차의 역사 - 세계 제 1차 대전
3. 전차의 역사 - 1/2차 대전 중간
4. 전차의 역사 - 세계 제 2차 대전

다른 무기류에 비교해서 전차는 전쟁의 역사 속에서 가장 급격하게 발전하는 무기체계이다. 아무것도 없었던 처음에는 단순히 개념에 불과했던 전차는 제 1차대전 기간 중 3년이 안되는 시간 동안 결정적 우위를 갖는 존재로 성장했다. 전차는 본래 참호전으로 교착상태에 빠지는 특수한 전략적 상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안된 특수 무기였다. 기본적으로, 전차는 순수한 보병이 갖출 수 있는 것보다 강력한 보호를 제공하면서 대포 및 기관총의 화력을 적진까지 가지고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 무기의 이러한 단일한 목적은 보병을 도와 적진을 돌파할 수 있게 만들어 줌으로써, 1914년 이후 등장할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던 기갑부대가 독일의 후방까지 진격할 수 있었다.

전장에 기동성 및 급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되돌려 줌으로써 지상과 공중에서의 전쟁의 형태를 혁명적으로 바꾸게 될 수단이 1차대전 시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주는 사람은 별로 없다. 바로 내연기관이다. 이것은 전차의 개발을 가능하게 하였고, 이는 마침내 전통적으로 기마부대가 가지고 있던 역할을 대체하고 전장에서 기관총의 지배력을 약하게 만든 기계화부대의 생성으로 이어졌다. 강력해진 화력과 방호력을 바탕으로 이들 기계화부대는 단지 20년이 지난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주역으로 성장했다. 장갑화된 화포와 장갑화된 보병 수송차량, 바퀴굴림방식의 수송차량, 지원 항공력, 이 모든 것들이 적절한 통신체계와 함께 근대적 기계화사단의 복합적 부대를 형성하고 있으며, 지휘관은 전세계의 거의 모든 지형에서 기동할 수 있는 능력을 다시금 얻게 되었다.

1914년 말, 영국군 장교였던 어니스트 D. 스윈턴 중령(Lt. Col. Ernest D. Swinton)이 프랑스에서 소형의 미국제 캐터필러 방식 견인차량을 본 후 영국 국방 위원회(British Committee of Imperial Defence)에 캐터필러 방식의 견인차량을 장갑화할 수 있고 이를 전쟁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추천하였다. 그의 제안은 위원회에 즉각적으로 받아들여 지지는 않았으나 위원회 구성원(이후 영국 해군성 장관이 되는)인 윈스턴 처칠(Winston S. Churchill)에 의해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처칠의 압력에 힘입어 영국 왕립 해군은 1915년에 "지상 함선"이라는 종류의 차량에 대한 실험 및 평가를 후원하였고, 결국 '전차'는 현실이 되었다. 이것이 프랑스로 옮겨지는 동안 초기 모델이 가지는 실제 목적에 대한 비밀엄수의 일환으로, 영국은 이 전차에 "러시아가 물통(water tank)으로 사용할 통(tank)"이라는 라벨을 붙였고 여기서 탱크(tank)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전차의 개발과 관련된 해군의 배경문서 역시 승강구, 선체, 이물, 우현 등의 용어로 설명되었다. 전차의 개발과 관련한 이러한 비밀은 보병 지휘관들의 전차 회의론과 맞물려서 보병/전차의 합동 훈련을 매우 적게 만들어버려 결국 전차는 보병들과 '따로 놀게' 되었고 독일군이 전차와 보병 각각을 따로따로 격파할 수 있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1916년 9월 15일, 프랑스 솜(Somme)에 있는 플레흐(Flers)에서 소규모의 국부적 공격이 시작되어 전차의 존재에 대한 놀라움이 퍼져나갔다. 1917년 11월 20일까지 캉브레(Cambrai) 지역의 영국 전차군단은 성공을 위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캉브레의 공격에서 7마일 전방을 향해 400대의 전차가 진격하여 6마일을 돌파했다. 이 날은 전쟁에 전차가 대규모로 투입된 첫번째 날이었다. 불행히도, 전차가 치고들어간 영역에 보병대가 투입되어 안전을 확보하지 못한 탓에 성공은 완전하지는 않았다. 영국군은 다음 해인 1918년 8월 8일, 아미앵의 돌출부에 있던 600대의 전차들로 또다시 승리를 거뒀다. 독일 육군의 에릭 폰 루덴도르프 대장(General Eric von Ludendorff)은 이 날을 독일 육군의 '암흑의 날(Black Day)'라고 불렀다. 독일은 캉브레에서 공격받은 것에 대한 대응으로 자체적인 장갑차량 제작 계획을 세웠고 곧 커다란 A7V가 나타났다. A7V는 18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무게가 30톤이나 나가는 괴물 전차였다. 그러나 전쟁이 끝날 때 까지 A7V는 단 15대만 제작되었는데, 다른 전차들은 설계도면만 만들어지는 상태인데다가 자재의 부족으로 인해 독일 전차군단은 이들 A7V와 몇몇 노획된 Mark IV에만 의존해야 했다. A7V는 1918년 4월 24일, 브루토뉴(Bretonneux)의 비어(Villers)에서 벌어진 세계 최초의 전차 대 전차의 전투에 참여한 전차로 기록되었다. 이 전투에서는 양쪽 모두 확실한 승자는 되지 못했다.

수많은 기계적 오류와 초기의 전차 작전을 지속적으로 수행할 추진력을 제대로 구현할 수 없었던 영국과 프랑스의 능력은 전차의 효용성에 대한 의심이 피어오르게 만들었다. 1918년까지 전차는 적의 대전차 방어진을 발견하고 이를 억제할 보병 및 지상공격기와 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매우 취약했다.

그러나, 미국 파병군 총사령관 존 J. 퍼싱 대장(Gen. John J. Pershing)은 1917년 9월에 미국 본토에서 600대의 중전차와 1200대의 경전차를 생산해 달라고 주문했다. 퍼싱 장군은 미국 파병군을 지휘하여 프랑스로 가면서 조지 패튼(George Patton)과 동행했는데, 패튼은 전차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전차는 다루기 힘들고, 신뢰성이 떨어지며, 전쟁에서의 병기로 가치가 증명되지도 않았기에 전장에서 어떠한 기능이나 가치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많았다. 주변의 대다수의 친구들의 조언에 맞서서, 그리고 많은 내부적인 갈등과 검토를 거쳐 패튼은 새로이 만들어지는 미국 전차군단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그는 미국 전차군단에 배속된 최초의 장교가 되었다.

미국에서 생산된 중전차는 영국 전차를 모방해 만든 43.5톤의 Mark VIII였다. 2문의 6파운드 포와 구경 0.30인치의 기관총 5문을 탑재하였고, 11명이 탑승해서 조작하며, 최대 속도 시속 6.5마일(10.4km/s)로 50마일을 움직일 수 있었다. 한편, 미국제의 경전차는 6.5톤의 무게를 갖는 M1917이었는데, 이는 프랑스의 르노(Renault)의 복제판이었다. 이 전차는 최대 속도는 시속 5.5마일(8.8km/s)이었으며 30갤런(113.4L)의 연료탱크를 탑재해 30마일을 주행할 수 있었다. 1918년 여름, 미국의 전차생산계획은 규모가 더 커져서, 포드사(Ford Motor Company)에서 3톤의 무게를 갖고 2명이 탑승하는 경전차를 개발하게 되었다. 이 세번째 전차는 1918년에 양산되었는데, 포드 모델-T에 탑재되는 4기통 엔진 두개를 사용하고, 0.30인치 구경의 기관총으로 무장하였으며, 최대 속도는 시속 8마일(12.8km/h)에 달했다.

미국의 전차부대는 1918년 9월 12일에 성 미이엘 돌출지에서 정규군과 함께 최초로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들은 제 304 전차연대의 제 344, 345 경전차대대에 속해 있었으며, 사령관은 프랑스의 보(Bourg)에서 그들을 훈련시킨 조지 S. 패튼 주니어 중령(Lt. Col. George S. Patton, Jr.)이었다. 진흙탕, 연료부족, 기계결함 등이 많은 전차를 독일의 참호속에 박혀 멈춰서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공격은 성공적이었으며, 수많은 귀중한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1918년 11월 11일에 휴전협정이 이루어질 때 까지 미국의 파병군은 심각한 전차의 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까지 어떠한 미국제 전차도 전투에 투입할 수 있을 정도로 완성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 밀리터리 카테고리 인덱스로 돌아가기
>>> 이글루스 가든 - 탱크랑 놀자

이 글은 Globalsecurity 측의 양해 하에 번역해서 포스팅하는 글입니다. 글의 저작권은 Globalsecurity.org에 귀속되며, 상업적/비상업적을 막론한 무단전재는 저작권에 저촉됩니다.

This article is posted by courtesy of John Pike of globalsecurity.org. All editorial content and graphics on this article are protected by U.S. copyright and international treaties and may not be copied without the express permission of GlobalSecurity.org, which reserves all rights.


by Yggdrasill | 2005/12/10 12:02 | 밀리터리 | 트랙백 | 덧글(1)
트랙백 주소 : http://muphy.egloos.com/tb/1202239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mooni at 2005/12/10 15:11
전차전의 라그나로크는 역시 쿠르스크 전투일까요...?

:         :

:

비공개 덧글

<< 이전 다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