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지지 않는 일



설혹 예상을 했다 하더라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예고되었던 슬픔을 희석할 수 있는 예상과 준비는 없었습니다.

20일 전 태어난 손주의 모습을, 나는 기필코 병상에서 일어나서 병원 바깥에서 바라보겠다라고 하셨던 소망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기만이 기원이 되고 기원이 기적이 되기에는 병마가 지나치게 깊었던 까닭입니다.

이미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화장장에 들어가는 관 앞에서는 장례기간 내내 모든 슬픔을 가슴속으로 묻고 손님을 맞았던 맏상주조차 눈물과 통곡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고인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는 모든 이들에게 퍼져갑니다. 뼛조각으로 바뀌어 작은 유골함에 들어가시는 모습에 다시한번 통곡소리가 들립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는, 그래서 지금의 이 상황이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 어린 꼬마들에게 있어서 유골함이 주는 감상은 '할아버지가 왜 작아졌느냐'라는 그들만의 궁금증이며, 그 궁금증에 대답할 말을 생각하는 순간 그 자리의 모든 '어른' 들은 고인이 이승과의 연을 완전히 놓았다는 사실을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깨닫고 다시한번 눈물을 흘립니다.

얼굴도 기억하기 힘들었던, 십여년간 보지 못했던 외가의 수많은 친척들을 만납니다. 어디 사는지야 알고있었을 터였고, 연락처야 한두번 묻기만 해도 알 수 있었지만 스스로의 삶이 바쁘다는 핑계 뒤로 감추어두었던 죄책감이 고개를 들고, 그 죄책감을 감추기 위해 과장된 모습으로 반가움을 표하지만, 아마도 그렇게 반가움을 표하는 서로는 서로의 죄책감을 마음속으로, 무의식적으로나마 알고 있었기에 비록 가식이 되었을지라도 십여년 전에 서로가 어린모습으로 웃고 장난쳤던 모습을 마치 지난주에 들른 마트에서 산 호가든이 오가든이었는데 그자리에 너도 있지 않았었냐는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어렸던 사촌동생들이 30줄에 접어든 모습에서 나 자신도 30대 중반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곱씹고, 부모님의 나이가 그쯤이라고 느끼는 나이가 자신의 나이라는걸 알게 될 때 쯤에서야 보이는, 그 전에는 보이지 않는거라고 스스로의 눈을 애써 가려왔던 부모님의 백발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노년이 되신 부모님의 모습 뒤로 고인의 그림자가 보이는 것이 서글픕니다.
고인을 모실 추모공원에서 어느 자리에 모시느냐를 결정하면서 집어든 카탈로그를 보면서 '나는 나중에 이런데로는 오기 싫더라' 또는 '여기 카탈로그좀 갖다줘야겠네' 하면서 허허 웃으시는 어르신들의 웃음 뒤에는 감출 수 없는 아쉬움이 배어나오고, 그걸 듣고 있는 자식들은 '아직 창창하신데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시냐'라고 같이 웃음을 짓지만 그 어색한 웃음 뒤에는 어르신들의 당혹스러운 자조섞인 농담에 쓰게 맞장구칠 수 밖에 없는 자식들의 쓰라림과 곤혹스러움이 서려있습니다.

모든 장례절차가 끝났고, 슬픔이 퍼져갔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모두는 일상으로 돌아올 겁니다.

약간씩은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은 고인을 보내면서 어쩌면 이 모든 의식은 고인이 세상과의 연을 풀어내고 떠나는 자리에서 당신이 가운데서 묶고있던 세상의 연을 타인에게 줘서 그들이 다시 묶게 하는 자리일지도 모릅니다.

편치 못했던 가시는 길에 힘드셨을 터, 내세에서는 부디 평안하시길.

덧글

  • JOSH 2011/04/03 12:00 # 답글

    저도 이제 나이가 있다보니,
    2세대 위의 할아버지 연배 분들은 10년 사이 거의 돌아가셨고...
    1세대 위의 아버지 연배 분들의 사망도 종종 겪고 있습니다.

    몇십년간 거기 계시는게 당연하다고 여기고 살았는데 갑자기 이제 안계신다고 하면 ...
    어떻게 마음 추스리기가 힘들더라구요.

    심심한 조의를 표합니다.
  • 마이스터 2011/04/03 12:19 # 삭제 답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Mecatama 2011/04/03 23:21 # 답글

    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새물결 2011/04/04 00:02 # 답글

    장인어른, 작년에 좋은 곳으로 가시고 큰 일 치루고 나니 저도 그 당시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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