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웨어컬럼'에 속하는 내용은 모 사이트를 위해서 준비중인 내용입니다. 초보자를 위해서 쓰는 글이지만, 지금까지 글장이 일을 하면서 '철저하게 초보자를 대상으로' 글을 쓴 적은 별로 없어서 일단은 불특정다수로부터 글의 난이도에 대한 평을 듣고자 이글루에 올리는 글입니다. '하드웨어에 관심이 있지만 컴퓨터에는 초보자'에 자신이 속한다고 생각되신다면 읽어보신 후 평을 남겨 주세요. :)
컴퓨터에 관심없으시면 패스하셔도 무방.. :)
PS. 이번에 올라가는 것은 초보자에게는 꽤나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만서도....
퀘이크 III가 절정의 비쥬얼 퀄리티를 보여주면서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던 2000년 여름, ID 소프트웨어 쪽에서 새로운 소식이 새어나왔다. 바로 퀘이크 III의 후속작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 후속작이 무엇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었으나 존 카멕의 주장으로 둠 III로 결정되었다고 한다.(ID 소프트웨어 내부에서의 발언권과 영향력에서, 존 카멕의 입지는 절대적이다. 그의 의견과 상충된다면 회사를 나가는 것이 편하다고 할 정도로...)
그리고 그 해 여름부터 둠 III의 개발에 대한 이야기가 돌기 시작하였고, 2년 후인 2002년 여름에는 둠 III의 엔진이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그리고 수많은 루머를 양산해낸 제품의 공식 출시는 수 차례 연기하기를 거듭하였고, 올해 여름 드디어 실제로 시장에 등장했다.
FPS 게임이라는 장르를 개척하고 항상 그 선두에 서 있던 ID 소프트웨어가 4년만에 내 놓은 둠 III라는 게임에서 우리는 어떠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필자는 둠 부류의 FPS를 몰입해서 즐기지도 않거니와 공포 속에서 긴장감을 자극하는 것에 기조를 둔 게임은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아서 둠 III도 플레이를 시작한 지 30분만에 접어버린 겉다리 게이머이기는 하지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둠 III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그동안 하드웨어를 테스트하면서 접했던 모습 등을 통해서 과연 이것이 어떠한 의미를 가질 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다.
1. 사양 - 엔진광고용으로 만든 게임이던가?
우선, 많은 사용자들이 둠 III를 성토하면서 내놓는 이야기 중에서 대중들로부터 가장 큰 설득력을 얻고 있는 주장이 바로 '엔진 광고용' 게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나오는 데에는 게임 자체의 플레이가 비영어권 사용자들로서는 스토리에 제대로 젖어들어가기 힘들다는 것도 한몫을 하고 있거니와(물론 게임 중에서 영어로 진행되는 각종 이벤트를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게이머들은 스토리의 짜임새와 게임성에 찬사를 보내고 있기는 하다.) 이미 많은 곳에서 회자된 '되먹지못한 필요 시스템 사양'이라는 것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시스템 사양을 생각해보자면, 솔직히 이야기해서 비현실적이다. 권장사양이야 차치하고라도, 필자가 사용하는 시스템사양(AthlonXP 2.4GHz(2400+가 아니다), 1.5GB의 메모리, GeForceFX 5800Ultra)을 '하이'도 아니고 가볍게 '미디움'으로 규정해버리는 둠 III의 엔진은 정말 제대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큰 마음을 먹고 업그레이드를 해야만 하게 만드는 골치아픈 존재이다. 항간에 회자되는 GeForce 6800Ultra 등의 초고성능(+초고가) 그래픽카드들을 사용해야 제대로 굴릴 수 있다는 '울트라' 등급은 아니더라도 '하이'에도 명함을 못 내밀 정도의 사양이 되었다는 데에 필자도 아연해져버린 것이다.

이게 실제 게임화면이라니, 어이가 없어질 정도다
이래서야 '엔진광고용'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법도 하다. 둠III의 엔진은 분명 그 효과와 현실감의 재현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는 탁월함을 부인할 수 없으며, 기존에 등장했던 그 어떤 것보다도 훌륭한 비쥬얼 및 물리엔진을 제공한다. 제작자인 존 카멕 역시도 인터뷰를 통해서 둠 III는 자신들이 지금까지 만들었던 어떤 것보다도 훌륭한 그래픽을 보여줄 것이라고 했으니 이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퀘이크 III에 비해서 둠 III에 대해서 사용자들이 느끼는 게임성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데에 있다. 퀘이크 III와 달리 둠 III는 기존의 FPS 게이머들로부터조차도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는 게임이다. 그 결과, 둠 III 자체만으로는 '대히트작'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물론 ID 소프트웨어의 신작을 목놓아 기다리던 많은 사용자들을 생각해 본다면 다른 어정쩡한 작품들이 히트를 친 것 이상의 판매고는 올릴 수 있겠지만 말이다. 좌우간, 문제는 그러한 비쥬얼을 구현하기 위한 하드웨어이다. 훌륭한 비쥬얼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하드웨어를 구축해야 함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사용자들이 느끼기에는 그 정도가 심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렇다면 왜 존 카멕은 이러한 당황스러운 엔진을 만들었을까.
퀘이크 III로 돌아가보자. 퀘이크 III 그 자체로도 훌륭한 게임성을 가지고 있었고 많은 사용자층을 형성하였지만(Quake 대회까지 열릴 정도로) 엔진의 높은 완성도는 다른 다양한 게임들에까지 차용되기에 이르렀다. 필자가 FPS 게임에 조예가 별로 없어서 지금 당장은 울펜슈타인 등의 몇몇 게임밖에 생각이 나지 않지만, FPS 매니아라면 필자보다 훨씬 많은 사례를 들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퀘이크 III 엔진을 사용해서 무려 3년 이상 동안이라는 기간동안 새로운 게임들이 나왔고 그 모든 게임들이 일시불이건, 건당 로열티건 간에 어쨌든 ID 소프트웨어에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했다. ID 소프트웨어의 실질적인 수익은 여기에서 나왔다.


Quake III의 엔진에 기반한 게임을 찾아보자면 밑도 끝도 없다
물론, ID software 자체의 게임은 제외하고라도 말이다.
둠 III 역시 마찬가지로 해석된다. 이번에 개발된 새로운 둠 III 엔진은 앞으로 3~4년간은 수많은 게임들의 축을 형성할 것이다. 벌써 Quake III의 차기작인 Quake IV에서 둠 III의 엔진을 사용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게다가, 존 카멕 역시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둠 III는 게임 개발자들을 위한 많은 장치를 가지고 있다. 게임 개발자들이 새로운 엔진을 통해서 자신들의 상상력을 실체화시키는 작업이 이전보다 훨씬 용이해졌다는 것이다. 지금에서는 비현실적인 하드웨어이겠지만(까놓고 말해서, 게임을 위해서 80만원짜리 그래픽카드를 구입하는 사용자가 얼마나 될까? 물론 있기야 하겠지만 80만원이면 간단한 시스템 본체가격의 두배나 된다), 반년마다 한번씩 경쟁적으로 신제품을 내놓는 NVIDIA와 ATI,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새제품을 내놓고 이전의 제품을 단종시켜버리는 인텔과 AMD를 보고 있자면 1년, 아니 반년만 지나도 둠 III의 엔진은 사용자들의 주변으로 깊숙이 파고들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2. AMD > 인텔
둠 III 엔진은 여러모로 현재의 하드웨어에서는 매우 버겁다. 필자의 저러한 사양을 미디움이라고 단정지어버리니 두말해서 무엇하리. 그래픽도 그래픽이거니와 CPU에도 무척이나 민감하다. 얼마 전 Anandtech에 공개된 벤치마크 자료를 보면 이 게임이 무엇을 얼마나 요구하고 있는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둠 III 엔진은 기본적으로 '메모리 대역폭'을 갈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게 안된다면, 부족한 메모리 대역폭을 어느정도 완충시켜 줄 수 있는 대용량의 캐시라도 필요로 한다. Athlon64 계열의 득세, 그리고 그에는 못미치나 기존의 펜티엄4를 능가하고 있는 프레스캇의 선전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말이 나와서 말이지, 인텔의 프레스캇 코어가 노스우드에 비해서 탁월한 성능을 보여준 첫 사례가 아닐까? 인텔 입장에서는 프레스캇이 한참 좋게 나왔으니 기뻐할 법도 하지만 그 위쪽으로 AMD64 계열 프로세서가 한참 좋게 나왔으니 좋다가도 좋지 않은 것이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Anandtech의 둠 III 벤치마크 자료 중 일부
좌우간, 이러한 프로세서 의존성 패턴이라는 것은 둠 III가 기존의 게임들에 비해서 월등히 많은 양의 거대데이터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준다. AMD64 계열 프로세서들은 메모리 내장 컨트롤러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프로세서에서 메모리로 데이터가 이동하는 경로에서, 브릿지 하나가 사라져 있다는 것은 그만큼 레이턴시가 최소화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으며, 이는 이론적으로는 펜티엄4와 동일한 대역폭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실효 대역폭에 있어서는 월등히 우세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AMD가 선택한 메모리 내장 컨트롤러라는 것이 인텔의 빌딩블럭(building block) 구조에 비해서 미래의 확장성(scalability)에서 손해를 보고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당장에 있어서는 유리한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텔의 빌딩블럭 기반 구조
전방위적인 확장성에 있어서는 분명 유리하다

AMD64의 HT 기반 아키텍쳐
메모리 컨트롤러가 CPU 내부로 옮겨갔다
인텔의 입장에서라면 당장에라도 FSB를 끌어올리고 DDR2로 이행하면서 AMD를 압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겠지만, 90nm 공정에서의 동작클럭이 예상만큼 빠른속도로 올라가 주지 않는데다가 DDR2라는 방식 자체가 DDR1에 비해서 레이턴시를 늘림으로써 동작클럭을 향상시키는(물론 차동전송이라던가 하는 방법이 도입되어서 고클럭에서의 원활성을 확보하였지만 기본적으로 레이턴시는 길어진다) 방식이기에 현재의 사용자들이 덥썩 받아들여주기가 무척 어렵다. 물론 인텔은 이러한 메모리 레이턴시 부분에서의 열세를 어떻게든 만회해 보고자 이에 특화된 칩셋(875, 925)을 내놓는 특단의 조치까지 취했지만, 그 결과는 신통치 않은 것 같다.
거대메모리를 요구한다는 측면에서도 상당히 골치아프다. 512MB의 메모리에서 1GB로, 그리고 그 이상으로 메모리를 확장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지금까지의 다른 게임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이다. GB 단위의 메모리로도 뭔가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만큼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메모리에 때려넣고 사용하기에 메모리 대역폭의 부족을 부르짖고 있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좌우간 GB 단위의 메모리를 사용하고 있는 게이머가 흔할 리는 없다. 어지간한 작업들은 512MB의 메모리로 '떡을 치는' 마당에 둠 III만이 독불장군마냥 모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메모리 대역폭만일까? 프로세싱 능력에서도 둠 III는 사상최강의 능력을 요구한다. 권장사양에 당당하게 펜티엄4 3.4GHz를 적어놓는 대담함에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실제 게임을 플레이해보면 이해가 갈 정도인데, 이는 매우 높은 수준의 물리엔진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벤치마크에서 사용하는 타임데모에서는 배제되는 물리엔진이 실제 게임 상에서는 개입되기 때문에 벤치마크에서 볼 수 있는 수치를 게임플레이에서 느낄 수 있는 수치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어지간한 게임들이 프로세서 성능이 특정 수준을 넘어가면 성능향상이 미미해지는 반면, 둠 III는 프로세서 클럭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성능도 따라서 올라가버린다. 이러한 성향은 앞으로 강력한 CPU가 출현한다면 그만큼 더 원활한 운용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64bit 프로세싱도 개입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들어서 인텔의 행보가 다급하게 보이는 것은 그러한 이유도 한 몫을 하고 있지 않을까?
3. NVIDIA > ATI
둠 III가 시장에 등장하면서, 아니 보다 정확히는 '둠 III가 시장에 출시될 것이라는 소식이 돌면서' 사용자들의 관심은 ATI의 그래픽카드에서 급격히 NVIDIA의 그래픽카드로 옮겨갔다. NVIDIA 제품군이 ATI 제품군에 비해서 월등히 높은 성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비싼 가격으로 인해서 업체들이 들여올까 말까 망설이기만 했던 GeForce6800 Ultra의 경우 시장에 등장하자 마자 동이 난다거나 사용자들이 아예 해외에서 직접 들여오기까지 하는 등 한바탕 난리를 치루기도 했다. 그간의 여러가지 벤치마크들에서 ATI 제품군이 높게 나타나면서 ATI가 주류로 굳어지고 있던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된 것이다. 특히 이번의 분위기 반전은 작년의 리니지 때와는 달리 전세계적으로 일어났다는 데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NVIDIA 제품군이 ATI에 비해서 성능이 높게 나온 까닭에는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겠으나 필자는 이것을 NVIDIA의 제품개발 성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ATI는 DirectX의 규격에 맞추어서 제품을 제작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DirectX가 지원할 수 있는 한도까지 그래픽카드를 설계하고 그 한도 안에서 최상의 성능을 발휘하게끔 만든다. 그래서 철저하게 DirectX에 기반하고 있는 어플리케이션들의 경우 ATI 그래픽카드 쪽이 우세를 보여준다. 3DMark03 등이 전형적인 사례이다. 한편, NVIDIA의 경우 그런 것들과는 무관하게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낸다. 이는 양사가 바라보는 방향 때문이다. ATI 역시 전문가용 OpenGL 그래픽카드를 생산하고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주력은 아니며 그 분야에 있어서 ATI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미미하다.

매출액 대비 수익에서는 GeForce와는 비교 자체를 거부한다는 Quadro
NVIDIA는 전문가용 OpenGL 그래픽카드 시장에서 절대적인 입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NVIDIA의 Quadro 제품군의 경우는 거의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고, 이 부분에서 NVIDIA는 GeForce와는 비교도 하기 힘든 높은 수익을 거두고 있다.(물론 판매량은 GeForce 쪽이 월등하기는 하지만) 결국 NVIDIA는 이 쪽도 같이 고려해야만 한다. NVIDIA 제품군이 데스크탑 부문에서마저 OpenGL에서 유독 강세를 보이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현재의 NV4X까지 그 구조가 계승되고 있는 GeForceFX 5800(NV30)의 발표 때 NVIDIA의 관계자에게 'GeForce의 사양은 DirectX를 한참 넘어서고 있다. 그렇다면 DirectX에 의존하는 어플리케이션들은 결국 성능을 끌어내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했을 때 NVIDIA는 담담하게 이를 인정했다. 그리고 '그러나 OpenGL을 사용한다면 모든 성능을 사용할 수 있다'라고 답했다. DirectX의 테두리 안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기능을 집어넣고 이를 OpenGL을 통해서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존 카멕이 NVIDIA 제품군을 개발 플랫폼으로 잡은 것은 이러한 특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사용하는 둠 III의 엔진은 DirectX 9.0c를 요구하지 않는다. DirectX를 필요로 하긴 하되 부분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본질적인 기능의 활용에 있어서는 OpenGL을 통해서 직접 그래픽카드를 제어한다. 제작자의 능력이 지나치게 탁월하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좌우간 그는 DirectX에 의존하지 않는 게임엔진을 만들어버렸고, 이는 DirectX가 사용하지 않는 그래픽 칩셋의 전 기능을 활용할 수 있게 된 이유이다. 그가 '오버클럭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걸...'이라고 언급한 이유도 이러한 것 때문이다. 다른 게임들에서는 DirectX라는 테두리 안에 막혀서 사용하지 않던 다른을 둠 III는 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아직도 둠 III의 비쥬얼이 완전히 개방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아직도 뭔가를더 끄집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일텐데... 향후 그래픽카드의 성능이 더 발전한다면 둠 III의 엔진도 여러가지를 더 개방해 줄 것이다.
NVIDIA와 ATI 양쪽의 개발 성향이라는 것이 각기 장단점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둠 III에서만큼은 NVIDIA의 선택이 옳았음이 입증된 것이다. 물론 이것이 다른 어플리케이션에 모두 적용된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다만, 둠 III의 엔진을 사용하는 다른 게임들이 나온다면, 그리고 현재의 개발성향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이러한 어플리케이션들에서만큼은 NVIDIA는 계속 우위를 점하고 있을 것이다.
4. 하드웨어 시장의 반등.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요즘들어서 재미있는 현상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고출력 파워서플라이의 시장유통량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더불어 고성능 HDD의 수요도 따라서 증가하고 있다. GeForce 계열의 전력소모량에 지레 겁먹은 사용자들이 그래픽카드나 프로세서의 업그레이드와 함께 고출력 파워서플라이를 장만하는 것이다.(이와 함께 이들 고성능 파워서플라이의 유통사 측에서는 파워서플라이의 업그레이드와 함께 하드디스크가 죽어버렸다거나 데이터가 날아갔다는 둥의 엉뚱한 질문을 받는 일이 잦아졌다고 한다. 그래픽카드 전원단과 HDD 전원단을 같은 케이블로 연결하는 일은 삼가는 것이 좋겠다.)
고출력 파워서플라이의 판매량 증가는 그만큼 사용자들이 하드웨어를 대폭 업그레이드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8월들어서 급격히 나타났다는 것은 둠 III가 시장에 크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파워서플라이라는 것이 웬만하면 업그레이드 대상에서는 제외되는 항목임을 고려한다면 둠 III로 인한 업그레이드가 은근히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요즘 전자상가의 분위기가 '처참할' 정도로 매출이 크게 떨어진 마당에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은 둠 III가 주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다른 게임 개발사들은 시스템 사양을 어느정도 고려하면서 게임을 만들어간다. 택도없는 사양을 요구했다가는 게임이 팔릴 리가 없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높은 사양을 요구했기 때문에 시장에서 조용히 사라져 간 게임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둠 III에서는 완전히 정반대의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존 카멕은 시스템 사양을 그다지 생각하지 않고 만드는 듯 하다. 아니, 아예 몇년 후의 사양을 기준삼아서 게임을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고사양이기 때문에 매장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사양이기 때문에 누구나 이를 따르려고 하는 분위기이다.
필자 역시 하드웨어 업계에 몸을 담고 있기에, 경위야 어쨋건간에 그동안 새로운 하드웨어 구입을 망설이던 사용자들이 슬금슬금 지갑을 열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그리고 그 선봉에는 인텔이 부르짖던 그랜츠데일 플랫폼도, 프레스캇도 아니고, MS가 부르짖던 멀티미디어 어쩌구도 아닌, 둠 III라는 게임이 덩그라니 놓여있다. 사용자들은 하드웨어 업체가, 소프트웨어 업체가 부르짖는 '추상적이며 막연한' 이유보다는 '원활한 게임'이라는 단순명쾌한 이유를 위해서 기꺼이 지갑을 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드웨어 업계가 살기 위해서는 그 하드웨어를 필요로 하게 만드는 소프트웨어가 존재해야 한다는 오래된 사실을 다시금 선명하게 상기시킨다.

둠 III가 하드웨어 시장의 호재로 얼마나 작용할 수 있을까?
엔진광고용이라고 해도 좋고 고사양 하드웨어 구입을 위한 충동질이라고 해도 좋으며, 속칭 '돈지랄 하드웨어'들을 위한 게임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그러한 평가들은 그리 오래 갈 수 없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존 카멕은 둠 III에서 새로운 게임플레이 방법을 시도함으로써(그 때문에 언어의 로컬라이즈 없이는 광범위한 지지세력 확보가 어려워지기는 했지만) 단순히 '길찾고 부수는' 게임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며(성공했는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어쨋건 둠 III 게임 자체의 '대박'여부는 큰 상관은 없으리라.), 새로운 엔진을 통해서 차세대 하드웨어가 반드시 필요하게 된 이유를 만들어주었다.
이제 그는 새로운 엔진을 준비하고 있다. 아마도 우리가 둠 III의 엔진이 '매우 가볍다'고 느껴질 때 쯤, 또는 인텔이 그토록 목놓아 외치던 10GHz의 벽을 돌파할 때 쯤(그리고 아마 PC용 파워서플라이가 600W를 훌쩍 넘어갈....), ATI와 NVIDIA가 서로 치고받으며 지금의 그래픽카드보다 열배 정도는 빠른 그래픽카드를 내놓을 때 쯤 해서 존 카멕은 새로운 엔진을 들이밀면서 '자, 새로운 게임이 나왔으니 하드웨어를 업그레이드 하세요'라고 이야기하면서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지구를 내려다보고 있을 지도 모른다.
PS. 그는 민간우주선 프로젝트에도 손을 대고 있다. 뉴스에 따르면 이미 그가 주도하는 우주항공사가 미국 모하비 사막의 발사기지 사용허가도 얻어낸 상태라고 한다. 정말로 몇 년 후에는 우주에서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