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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zerkampfwagen VIII Maus
Panzerkampfwagen VIII Maus



출처 : http://www.achtungpanzer.com/pz7.htm - 보관파일

번역후 느낌

1. 히틀러, 제대로 미쳤구나!!!
2. 남자의 로망을 아는 것인가....
3. 커맨드 앤 퀀커 시리즈에 줄창 나왔던 매머드탱크(및 그 후속모델(?))들의 쌍포신은 이녀석에서 컨셉을 잡은 것이었단 말인가!!!!




!!!!! 퍼가실때는 반드시 제게 먼저 사전동의를 구해주십쇼. !!!!!

Panzerkampfwagen VIII Maus
Porsche Typ 205 / Tiger II(P)


사진
Boblingen에서 있었던 테스트 중에 선보인 모의포탑 장착 Maus

초중전차(超重戰車)의 개발은 크룹(Krupp)사가 (구)소련연방의 초중량 전차를 연구하기 시작했던 1941년 초부터 시작되었다. 1942년 초, 크룹사는 Tiger-Maus(VK7001)과 PzKpfw VII Lowe(VK7201)의 설계안을 내놓았지만, 이 전차의 주문은 1942년 5월 5/6일이 되어서어야 이루어진다. Lowe는 시제품 제작단계까지 진전되지는 못했으나 이후의 초중전차 개발의 기틀이 된다. 1942년 3월 21/22일에 포르쉐(Porsche)는 신형 100톤 Panzer-VK10001/Prosche Typ 205의 계약을 체결하였으며, 4월 14/15일에는 신형 100톤전차는 최소한 100개의 포탄을 적재해야 한다고 규정지었다. VK10001은 1942년 5월에 아돌프 히틀러가 개인적으로 주문함에 따라 페르디난드 포르쉐 교수(Professor. Ferdinand Porsche)와 크룹사의 뮬러(Muller)박사에 의해서 만들어질 예정이었다. 히틀러는 120톤의 중량을 갖고 고성능의 L/60 및 L/72 포를 탑재한 ‘불패의’ 초중량전차를 원했다.

차체, 포탑, 무장의 제작은 크룹사가, 전체적인 조립은 알케트(Alkett)사가 담당하였다. 초기의 사양은 150mm의 L/40 주포와 20mm의 MG151/20 중(重)기관총을 탑재할 것을 요구했으며, 한편으로 128mm의 L/50 포를 탑재하는 것도 고려되었다. 시제차량은 1943년 봄 이전에 가동되었다고 한다. 1942년 6월 23일, 포르쉐는 VK10001의 무장을 150mm L/37 포와 105mm/L70 포로 강화시킨 설계안을 제안했으며, 시제차량을 1943년 5월까지 준비할 것을 약속하였다. 1942년 12월, 150mm 포와 해군의 127mm 포, 128mm Frak와 포신이 길어진 128mm의 포가 검토되었다. 같은 달, 첫 차량을 1943년 여름까지 준비하고, 이후 월 5대씩 양산하는 계획이 재시작되었다. 최초의 제식명칭인 VK10001 및 Porsche Typ 205("매머드(Mammoth")는 1942년 4월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이후 1942년 12월 Maeuschen(Mousy)로 바뀌었고, 1943년 2월에는 Maus(Mouse)로 바뀌었다. 1943년 1월, 히틀러는 Maeuschen에 128mm와 75mm의 주포를 탑재하기로 결정하고, 150mm KwK44 L/38 포나 170mm의 KwK 44 포는 향후의 사용을 위해 설계하기로 하였다. 초기의 사양에서 요구되었던 포탄적재량은 충족되지 못했으며, 추가적인 변경으로 인해 축소되었다.

이러한 설계로부터 188톤의 중량을 갖는 초중량 괴물전차가 탄생한다. 1943년 5월 1일, Maus의 목재 실물모형이 히틀러에게 증정되었으며 히틀러는 양산을 인가하고 150량을 계속 생산할 것을 주문하였다. 그러나 1943년 11월 4일, Maus의 개발은 중단되었으며, 1량만이 평가를 위해서 생산되었다. 1943년 10월에는 히틀러가 요구했던 150량의 주문이 취소되었다.

1943년 12월 24일, 포탑을 탑재하지 않은 시제차량이 알케트사에 의해서 완성되었으며, 다각적인 테스트가 행해졌다. 이 테스트에서 Maus는 엄청난 중량과 및 중량대 출력 비율로 인해서 이동이 매우 어려웠다. 첫 시제차량인 V1(Maus I)은 다임러 벤츠(Daimler-Benz) MB509(항공기용의 DB603엔진을 토대로 개발)의 개조한 엔진을 사용했는데, 예상되었던 20km/h의 속력에 크게 못미치는, 13km/h의 속도만을 이상적인 환경에서 내 주었다. 또한 이러한 초중량차체를 떠받치기 위해서 개조된 서스펜션 시스템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또 다른 문제는 차체의 중량 자체에 있었다. 지나치게 무거운 나머지 이 전차가 지나가는 것을 견뎌줄 수 있는 교량이 없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Maus는 최대 8m의 수심을 도하할 수 있는 스노클을 장비하게 되었다. 1943년 12월, V1은 중량만 실제 포탑과 동일한 모의포탑을 장비한 채로 테스트에 들어갔다. Maus I은 위장색과 적색 별/해머/낫의 마크를 그려넣어서 러시아 전차로 위장되었다.

사진

1944년 3월, 최초의 V1에서 세부적인 면 쪽으로 상당부분 변경이 가해진 두번째 시제차량인 V2(Maus II)가 생산되었지만, 동력부를 갖추지 못한 상태였으며, 이는 1944년 중반에 가서야 갖춰진다. 1944년 4월 9일에는 크룹사가 포탑을 제조하였으며, 이는 1944년 6월에 납기되어서 테스트를 위해 장착되었다. 크룹사는 128mm의 KwK 44 L/55 포 및 동축의 75mm KwK 44 L/36.5 포와 7.92mm MG34 기관총을 갖추어서 막강한 화력을 Maus에 부여하였다. 128mm의 주포는 3500m 이상의 거리에서 30도의 경사각을 갖는 셔먼(Scherman), 크롬웰(Cromwell), T-34/85, JS-2 전차의 전/측/후면 장갑을 관통할 수 있었다. 포탑에는 짜이스(Zeiss)제의 거리계가 장착되었으나 완전히 완성되지 못한 상태였으며, 당시에는 갖추어지지 않았던 몇몇 부품이 나중에 보내졌다.

Maus I은 크룹사의 두번째 포탑이 장착될 예정이었으나 이것은 끝내 완성되지 못하였고 모의포탑만이 장착된 채로 남았다. 1944년 7월 25일, 크룹사는 2조의 차체가 곧 완성될 것이며, 이후 2조가 더 만들어질 것이라고 보고하였다. 1844년 7월 27일, 크룹사는 이 4조의 차체를 폐기할 것을 주문한다. 동년 8월 19일 크룹사는 포르쉐에 Maus와 관련된 작업을 중단할 것을 요청받았다고 알렸다. 1944년 9월, 두번째 시제차랑의 테스트가 시작되었는데, 이 차량에는 다임러 벤츠 MB517 디젤 엔진이 탑재되었다. 주행부는 스코다(Skoda)사가 제작하였는데, 12개의 리턴롤러가 지지하는 더블 휠을 장착한 차체가 사용되었고 궤도의 폭은 1100mm였다. 모든 해치가 닫혔을 때 승무원은 내장된 팬 및 송풍기에 의해서 공급되는 산소로 호흡하였다.

Maus를 운반하기 위해서 14개의 축을 갖는 운반용 화물 철도차량(Verladewagon)이 비엔나의 그라츠 심머링 파우커 웍스(GrazSimmering-Pauker Works)에 의해서 제작되었다. 1944년 1월부터 10월 초까지 베를린 근교의 Kummersdorf에서 시험이 이루어졌고 이후에는 Boblingen에 있는 포르쉐 공장에서 시험되었다. 연합군의 독일 공장에 대한 폭격으로 인해서 생산이 지연된데다가, 엔진의 문제로 인한 지연도 생겨서 시험에 소요된 기간은 매우 길었다. 한편, 독일군은 8.8mm 포를 Maus에 탑재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도 진행했는데, 이는 88mm Flak 43 포를 Maus에 2연장으로 탑재하도록 포탑을 개선하는 작업으로 이후 중형 Flakpanzer에 사용되었다.

사진

몇몇 자료에서는 포르쉐 사가 ‘Maus를 만든 히틀러의 목적’이 실제적으로 이동성의 제약이 큰 장애가 되지 않는, 서부전선에서의 대서양 해안 방어진의 구멍을 메꾸는 것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보다 일반적인 자료에서는 V2의 시제품이 Kummersdorf에서 폭파되었다고 나오기도 하지만, 일부에서는 Kummersdorf의 공격으로부터 설비를 방어하기 위해서 V2가 실제 전투에 참가한 것을 보았다는 주장도 있다. 종전 후 거의 완성된 V1의 포탑 및 세번째 차체가 에센(Essen)에 있는 크룹사의 공장에서 발견되었다.

결국 Maus는 흥미로운 설계를 가지고 있기는 하나 초고성능 전차라기 보다는 이동식 포대 수준으로 격하시켜버리는 떨어지는 이동성 및 지나치게 무거운 중량 때문에 전투에서의 가치는 상당부분 제한되고 있다. 단 한 대의 완전히 완성된 시제전차(V1의 차체에 V2의 포탑을 얹은)만이 1951년/52년에 걸쳐서 Kubinka에서 테스트되었으며, 현재는 러시아 모스코바 근교에 있는 Kubinka의 무기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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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ggdrasill | 2005/02/02 23:11 | 밀리터리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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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galant at 2005/02/02 23:14
쓸데없는데 투자한게 한두개가 아니죠.-_-
Commented by jaffy at 2005/02/02 23:18
1000마력급 12기통 엔진이 제대로 로망이군요. =_=;;;
Commented by 有機物 at 2005/02/02 23:44
이러니까 양산이 안되죠 (...)
Commented by 쉬름 at 2005/02/03 00:58
8호 전차 딥다 큰 서생원의 비애랄까요... 굴러봐 굴러봐~ 땅파고 들어가냐!!!(...)
Commented by 비비 at 2005/02/03 09:22
머피 잘 살고 있구나... 유럽의 메가웨폰하면 역시 전차포...아니갔냐? 쓸모를 떠나 그 위용이란...
Commented by Yggdrasill at 2005/02/03 09:54
▷ galant | 그래서 사람들이 더 열광하는지도 모르겠어요. -ㅅ-
▷ jaffy | 으음.. 로망..이지.. -ㅂ-
▷ 有機物 | 양산이라는 개념이 잡혔는가도 의심스러워요. -ㅅ-
▷ 쉬름 | 으음.. 기어가다가.. 지형 좀 무르면 정말 땅속으로 들어갈지도... -_-
▷ 비비 | 잘 살고 있지요! =ㅂ= 술사줘요오오오오오!!!
Commented by Utopia의꿈 at 2005/02/03 13:14
히틀러와 마징가Z의 닥터 헬과의 공통점은.?..흠..
Commented by 슈지 at 2005/02/04 12:05
뭐, 히틀러는 롱기누스의 창을 찾아오라고도 했었다는데 그보다 약한 뻘짓이 많긴 해도 적진 않았겠죠.
Commented by 로리 at 2005/02/04 13:18
그런데 저런 무기는 당시 독일로써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질적, 양적인 열세를 맞고 있던 병기의 독일이 질적인 우세로 양적 열세를 극복하려는 행동이었으니까요...

그저 단순하게 로망이니 하는 것도 문제가...(먼산)

하지만 굴러다니는 전차 중에서 양적인 질적인 면에서 가장 앞서던 나라는 역시나 쏘련이였죠. 쏘련의 전차군단은 성능면, 물량면 모든 면에서 독일을 압도 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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